대한민국 국방이 총성 한 번 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 붕괴는 병력 부족에서 시작됐고, 지휘권 상실과 전투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상황을 인지하고도 개선의지를 상실한 군 지휘부의 자기부정이다. 지금 군대는 ‘복지’라는 이름의 포퓰리즘에 길들여진 채, 스스로 무장해제되고 있다.
'민원 행정화'된 병영, 지휘는 실종됐다
오늘날 병영은 더 이상 상명하복의 조직이라 보기 어렵다. 스마트폰을 들고 병사 개인 민원을 즉각 외부에 제기할 수 있고, 지휘관은 SNS 여론과 감사에 대응하기에 급급하다.
정당한 지시는 ‘갑질’로, 훈련과 통제는 ‘인권침해’로 비화될 가능성에 늘 대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현장의 간부들은 병사들을 ‘관리’는 하되, ‘지휘’는 하지 않는다. 병사는 군인이 아니라 ‘고객’이 되었고, 간부는 지휘관이 아니라 ‘민원 처리자’가 되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병영의 기강과 전투준비태세가 유지될 리 없다.
복무기간 단축은 숙련도의 붕괴로 직결된다
최근 10여 년간 복무 기간이 급속히 단축되면서 병사 1인이 숙달되는 주기가 심각하게 단축됐다.
전차, 자주포, 드론, 통신장비 등 현대 무기체계는 단순 작동이 아닌 전술적 운용 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6개월 이내의 훈련으로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전투력 유지의 ‘공백’이 상시화되고 있다.
현역 병력 수는 유지되지만, 싸울 수 있는 인력은 감소하는 구조적 붕괴다.
병력 감소는 현실, 대응은 여전히 포퓰리즘
출산율 하락에 따른 병역자원 급감은 이미 현실이다. 2004년 36만 명 수준이던 징병검사 대상자는 2023년 20만 명 이하로 줄었다. 2030년을 전후로 병역 자원의 절벽이 본격화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표를 의식한 단기 처방에만 몰두한다.
복무기간 단축, 병사 월급 인상, 복지 향상 등 대중친화적 조치는 많지만, 병력 충원 전략이나 전문병 운영 계획, 지휘체계 보완 방안 등 국방의 본질을 겨냥한 논의는 부재하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목소리를 잃은 군 지휘부’
이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군 내부의 자기 검열과 침묵이다.
군 고위 지휘관들은 외부 압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정치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관료형 리더십에 머무르고 있다.
작전지휘관이 정치적 고려 없이 군의 본질을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군의 자율성과 생존력은 회복될 수 없다.
포퓰리즘 정책의 부작용에 대해 군이 스스로 언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방조이자 책임 회피에 가깝다.
국방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사 월급이나 생활관 시설 수준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군대는 싸우기 위한 조직”이라는 국민적 합의의 재확인이 필요하다.
이제는 정치권도, 군도, 그리고 국민도
- 병역 자원 부족에 대한 냉정한 현실 인식
- 모병제와 여성 징병, 외국인 활용 등 금기시된 의제의 공론화
- 간부 중심의 전문 직업군 체계로의 전환
등 실질적인 개혁 의제를 검토해야 한다.
총성 없는 붕괴를 막기 위해
총을 쏘지 않아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군대는 무너질 수 있다.
지휘권이 약화되고, 숙련병이 사라지고, 병사 중심의 민원 행정이 병영을 대체할 때
그 조직은 이미 싸울 수 없는 군대가 된다.
국방은 ‘조용히’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은 그 붕괴를 깨달았을 때, 이미 너무 늦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